[책&생각] 이발소 안 가려던 첫째 사자, 어느새 컸어요
등록 2022-06-03 05:00
수정 2022-06-03 09:55
수정 2022-06-03 09:55
염혜원 작가 ‘으르렁’ 두번째 얘기
이발소 이어 소아과 찾은 가족
두려움 다독이며 검진에 도전
주사 맞기 무섭다면 이 책 먼저
염혜원 글·그림 l 창비 l 1만 3000원아기가 태어나 세상으로 걸어 나오는 데는 몇 개의 동굴을 통과해야 할까. 아이들은 별별 괴물이 사는 동굴을 하나씩 통과하면서 한 뼘씩 자란다. ‘치과 동굴’에서는 이빨을 깨 먹는 충치 괴물을 물리치려 고막 찢는 울음으로 필사적 결투를 벌인다. ‘미용실 동굴’ 입구에서는 머리카락을 잘라 먹는 가위 괴물이 너무 무서워 도망치고만 싶다. 때론 뒷걸음치다 망태 할아버지한테 잡혀갈까 봐, 그 자리에 얼어붙어 엉엉 울고 만다.
말랑말랑한 내면을 단단하게 성장시키는 ‘두려움’이라는 감정. 아이의 근원적 두려움 앞에서 초보 양육자들도 어쩔 줄 몰라 하기 일쑤다. 사탕발림식 달래기 말고 묘수는 없을까.염혜원 작가는 아이 마음속 두려움을 가만 들여다보고 다독이는 비법을 아는 듯하다. 이번에 펴낸 그림책 <으르렁 소아과>가 힌트를 준다. <으르렁 이발소>에 이은 ‘으르렁 시리즈’ 2편이다. ‘주사 맞기가 무서운 나의 친구들에게’란 추신이 붙었다.
걱정 많은 아빠 사자, 겁이 많지만 조금은 자라 우쭐해진 첫째,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둘째의 병원 나들이를 앞두고, 집안의 공기는 잎사귀가 뾰족한 테이블야자 화분처럼 쭈뼛해진다. 아빠는 “넌 이제 다 컸어, 그렇지?” 아이 마음의 문을 똑똑 두드린다. 지난번 곰 선생님의 손가락을 물어버린 첫째가 이번에는 병원 검진을 무사히 잘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그럴 일 없다”며 첫째는 배짱을 부린다. 소아과 건강 검진이 처음인 동생한테 “걱정 마”라며 안심시킬 줄도 안다. <으르렁 이발소>에서 아빠 말을 듣지 않으려 했던 첫째가 어느새 컸다. 키재기, 시력검사를 어떻게 하는지 동생한테 알려주는 오빠를 믿어도 될까. 병원 검진의 마지막 관문, 예방 주사만 남았는데 …. 첫째는 동생 앞에서 시범을 잘 보일까.볼로냐 라가치 상, 에즈라 잭 키츠 상 등을 받은 작가가 그려내는 세밀한 표정이 아이의 다층적 내면을 읽게 한다. 아빠는 아빠대로, 오빠는 오빠대로, 동생은 동생대로의 막연한 불안과 갈등 상황을 ‘함께라면 괜찮아’ 느낌의 따뜻함으로 녹여냈다. 함께 보면 크는 책이다. 4살 이상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창비 제공